팔각회 활동
그가 한국에서 최초로 팔각회를 창립하여 반공안보의 국민적 정신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을 때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강석진 회장은 어느 여름날 아침 조회에서 간곡한 훈시를 하였다.
"경제적 뒷받침이 없이는 가정이나 사회, 국가 안보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며, 본인은 경제인으로서 산업전사인 여러분의 노고를 덜어 주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 나라 안보를 항상 염두에 두고 힘을 쏟아 왔다"
강석진 회장은 기업의 존재가치를 단순한 이익추구에 두지 않았다. 이 나라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책무를 우선하여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역사의 발전 앞에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사정은 접어 두어야 하며 누구나 국민 된 도리로 국가적 현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칙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경영하는 산업체의 종사자들에게 자신의 국가관을 교양하고 국민 된 도리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강석진 회장이 가지고 있던 평생의 신념은 첫째 국가 안보이며, 둘째 윤리도덕의 정립, 셋째 사회규범의 유지발전, 넷째 문화의 향상, 다섯째 경제적인 발전을 위한 경영인의 책임이라는 치밀한 철학을 확립하고 있었다. 그는 이중에서 가장 우선적인 명제를 국가안보에 두고 당시 한국의 기업인들 중에 유례 없이 반공과 안보 차원의 사회활동을 솔선하여 이끌어 나갔다. 강석진 회장은 동명그룹내의 향토예비군의 실질적인 전투력 향상과 유사시 향토방위를 담당하기 위한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 현역 군인을 초빙하여 예비군 연대를 창설하였다. 기업의 이윤추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직장 예비군의 육성에, 사주인 회장이 직접 나서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면서까지 유비무환의 안보정신을 실현한 것은 오로지 강석진 회장의 투철한 국가관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국가 안보정신은 국난의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 가진 평생의 철학에서 나온 애국심의 발로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국가관을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팔각회 운동을 선도하였다.
1967년 강석진 회장은 부산지역 각계 지도층 인사들로 팔각회를 창립하고 초대 총재에 취임하였다. 이후 18년의 재임기간 중 수 많은 업적을 쌓으면서 국가안보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강석진 회장은 팔각회의 이념이 '평화통일', '자유평화', '사회봉사'에 있음을 명확하게 천명하였다.
팔각회는 동명 강석진 회장이 주도하여 창립된 단체이자 그 활동에 필요한 자금과 배후 지원의 대부분은 강석진 회장이 후원하였으므로 팔각회의 이념이 곧 동명 강석진 회장의 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
(1979.4.27)